크리스토퍼 로빈(이하 로빈)은 유년 시절 곰돌이푸와 친구들과 매일 즐거운 나날을 보냈던 추억을 가진 인물. 하지만, 로빈이 기숙사 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곰돌이푸와 친구들은 로빈이 숲에 찾아와주기를 기다리며 매일 문앞을 기웃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푸우는 현실세계로 나와버리게 되고 로빈을 만난다. 하지만 로빈은 1차 세계대전 참전도 겪고, 지금은 고급 가방 회사의 임원쯤 되는 가장이 되어있었다. 로빈은 반가워하기는 커녕, '푸! 네가 왜 여깄는 거야?'라며 다시 푸를 숲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어린 시절 살던 동네로 향한다...
이후 줄거리는 영화를 한 번 보시고 파악해보시길..!
[Silly old bear]
푸가 귀엽게 답답한 모습을 보일때마다 로빈이 푸를 부르는 말이다. 영화 한글자막에선 '미련곰탱이'로 나오는데.... Silly는 그런 무지막지한 뜻은 아니고.. 귀여운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볼때마다 거슬렸다.
크리스토퍼 로빈의 어른모습으로 나온 배우는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를 연기했던 배우라서.... 그 근엄한 얼굴로 '미련곰탱이'라고 푸에게 하는걸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로빈의 유년시절의 상징, 푸와 친구들]
푸와 친구들이 실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로빈이 어렸을 적 상상해낸 케릭터들에 가깝다. 다들 살아있는 동물들이라기보단, 봉재 인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처음 예고편에선 푸와 친구들이 뽀송뽀송하기보단 약간 물 빠진 인형들 같이 생겨서 왜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삽입하지 않았을까 의문이었는데, 이는 오히려 영화를 보다보니 더 좋게 느껴졌다.
항상 방방 뛰며 신나보이는 티거도 활기가 넘치고 즐거워보이는 느낌보다는... 왠지 짠하고 슬프다. 억지로 쥐어짜내는 것 같기도 하고.. 고여 있는 느낌. 단어도 들리는대로 따라하다보니 아이들처럼 조금 엉뚱하게 알아듣고 따라하기도 한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이 친구들은 그대로였다. 그게 왠지 짠하고 슬프게 느껴졌다. 이요르(당나귀)는 진짜 잘 어울린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마음마저 함께 늙어버린 로빈과는 달리, 그들은 여전히 답답하고 안쓰럽기까지하다. 푸는 로빈이 나무랄때마다 같이 화를 내기는 커녕 '미안...'하며 고개를 숙이고 풀이 죽는다. ㅠㅠ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로빈은 그 와중에 푸를 엄청 나무라고 귀찮은 존재로만 여긴다. 진짜 무시도 이런 개무시가 없는데, 푸가 영화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반갑다던지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은 없다. 그냥 엄청 뭐라고 쏘아붙히기만 한다.
로빈에게 유년시절이란 그저 지난 일일뿐이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떠올리는것조차 귀찮고 시간이 아까운 것으로 전락해버린 것..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잃어버린 것에대해 어쩔 수 없다고, 심지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별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굉장히 두렵고 재미없는 이야기다.
[코끼리에 당해버려 저주에 걸려버린 거임~ ]
작중에는 푸와 친구들이 무서워하는 헤팔럼
아무래도 로빈은 힘든 일들을 겪으며 헤팔럼에게 당해버린듯 하다.
아이들은 같은 영상을 보고 반복학습을 하며, 예측 가능한 것을 보는걸 즐거워한다고 들었다. 덕분에 같은 비디오만 100번 넘게 본 유년시절의 추억을 많이들 갖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조금만 마음이 늙어도 신선한 것을 점점 더 원하게 된다. 더 강한 자극, 더 신박한 자극을 찾는다. 같은 행복과 즐거움은 더 이상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지 못하게 된다. 다크나이트에 나온 조커의 명대사가 생각났다. I believe whatever doesn't kill you simply makes you… stranger.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숙한 딸과 천사 아내]
그 와중에 로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착한 여자들과 살고 있다. 딸 아이는 항상 바쁜 아버지를 그래도 이해해주며 어른스럽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로 딱히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헤팔럼에게 당해버린 남편을 이해해준다.
로빈이 내뱉는 말들이 너무 밥맛이라 짜증나기는 한데, 그가 처해있는 회사에서의 상황 같은 건... 마법처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가족의 생계를 어쨌든 책임지고 있는 아저씨다보니 뾰족한 수도 없다.
왠지 저러다가 나중에 와이프한테 황혼 이혼당하는거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푸와 친구들을 딸과 아내가 만나게 되고 알게 되며, 로빈과의 관계도 다행히 해소가 된다. 아마 로빈의 유년시절을 조금 더 알게 되고 그 당시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 덕이리라.
새삼 느끼는거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의 유년시절에 대해 잘 모른다. 단편적으로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친구와 무엇을 하며 놀고, 어떤 것을 두려워했고 어떤것을 고대했으며 좋아하고 사랑했는지... 처음 마음이 부숴졌던 적은 언제인지, 지금과 어린 시절은 어떻게 다른지 등등..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친한 사람들에 한해서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걸 굉장히 좋아해서 누군가 이런 이야기들을 해줄때마다 귀담아 듣게 된다. 자주 너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게 되지만, 그래도 즐겁다.
[마음이 늙어버리는 것]
가끔 예전에 알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내 자신이 성장했다고 해서 예전과 그대로인 상대방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예전에 즐거워했던 것들이 이제는 전혀 재밌지 않고 즐겁지 않게 느껴질때가 있다.
마치 성장한 로빈이 푸에게 매번 면박만 주며,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하지만 로빈이 나이를 먹고 성장했다고 해서 푸보다 훨씬 성숙한 존재라고 할 수 없다. 푸는 머리가 명석하지는 않지만, 푸가 현실세계로 함께 가길 무서워하는 피글렛에게 'we need you'라며 손을 잡아주는 모습은 이 영화 최고의 한 장면. (피글렛이 '헤헿 내가..필요하다구?' 하는 모습이 엄청 귀엽다)
세상 사는데 다 챙기면서 살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방향으로든 조금 성장했다고 해서 내 소중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상처를 주는 일은 없도록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분명 로빈의 푸와 친구들처럼 imaginary friend같은게 어렸을 때 있었던 것 같다. 포켓몬 게임 같은 걸 해도, 왠지 진짜 이런 동물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겐 실제로 동물친구가 있었다. 중학교때부터 13년간 내 곁에 있어줬던 우리 강아지.
말도 못하고 천재견 소리 들을 강아지는 아니었지만, 녀석이 없는 이 가을이 너무나 허전할 때가 많다. 내일은 똥깡의 2주기가 되는 날이다.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립다. 푸처럼 하루만이라도 내 앞에 나타나줬으면 좋겠는데... 로빈이 참 부러웠다..
나라면 내 친구를 보자마자 안아줬을텐데